***vancouver 2010 Olympic***
*** NBC olympics ***
ID: PW:
 ·    home    ·    mtb    ·    links    ·    videos    ·    gallery    ·    contact    ·   


가장 긴 출근 길
kmtb  (Homepage) 2004-07-26 08:28:52, 조회 : 10,416, 추천 : 1022
- Download #1 : 3_12_2003_4_01_AM_0001.jpg (25.9 KB), Download : 26


가장 긴 출근 길

                                                                                                           글: 그래이미 블란스

내가 만약 직장이 없었다면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즐기다가 밤이 되면 내 아이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만 금새 아이들은 굶주리고 헐벗게 되고 내 자전거와 차는 정비가 필요하게 되겠지. 그래서 일을 해야 한다. 그래도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은 어쨌든 시간을 내서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내 얼굴을 잊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연습과 훈련을 하지 않으면 실력이 저하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내게는 너무 중요한 일들이므로 나는 사회 활동(?)이 적은 캄캄한 시간에 자전거를 타기로 하였다. 야간에 자전거를 타는 것은 내게 몇 년 동안 익숙한 습관이 되었고, 작년 초부터는 이른 아침에 3 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출근 하는 것 역시 하나의 주간 이벤트가 되었다.
펜드랜드(Pentlands)에 살면서 에딘버그(Edinburgh)까지 출근하는 것이 나만의 특별하고도 자유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또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밤에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휠씬 더 괴롭기 때문에 보통 가장 힘든 수면 부족을 견디는 훈련도 잘 되는 듯 했다.
매월 첫 번째 주 화요일, 나와 나의 동료들은 아침 일찍이 보날리(Bonaly) 언덕에서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면서 갑갑한 교통 체증 속에 출근 길에 오른 사람들을 향해 신나게 웃어본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것들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했다.
평소처럼 이른 아침 자전거를 즐기던 어느 날, 내 머리 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야간과 이른 아침 라이드를 같이 할 수 있다면?’ 그런 생각과 동시에 내 이 아이디어를 듣고 너무 심한 거 아니냐며 나를 이상하게 쳐다 볼 나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내 생각을 잠시 접고 일터로 향하였다.
그렇게 나의 ‘가장 긴 출근 길’ 계획은 시작되었다. 어느 하루 퇴근을 해서 미리 정해 둔 아무도 오지 않는 언덕과 코스들로 향하고 어두워질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밤이 되면 라이트를 켜고 계속 자전거를 타고.... 라이트와 모든 에너지가 소모되면 야참을 먹고 위스키를 마시다가 해가 다시 뜨기를 기다리며 잠이 들고.... 아침이 되면 모닥불을 피워서 아침 식사를 하고 바로 출근을 한다. 그리고 직장 동료들에게 나의 특별한 하루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남들이 보기엔 미친 짓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하루치 경비로 자전거를 두 배로 탈 수 있는 나름대로 멋진 계획이다.
한여름이 되었고 아직은 많은 수는 아니지만 대담한 몇몇의 사람들이 나의 계획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런데 날씨와 상황에 맞는 장소와 날짜를 맞추는 일이 문제가 되었고 목표도 없이 조건도 없이 무작정으로 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어느 새 가을이 찾아왔고 그리고 밤이 긴 겨울이 왔다. 나와 나의 동료들은 날씨가 좀 더 좋은 다음 해를 기약하며 일단 잠시 중단하기로 하였다.
새해가 밝았고 나는 새해 계획이 필요했다. 나의 ‘야간 자전거 타기’에 뭔가 더 튼튼한 기반이 필요했다. 2003년이 ‘이른 아침 자전거 타기’의 해였다면 2004년은 날씨가 좋던 나쁘던 한 달에 최소한 하루 항상 새로운 장소에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야간 자전거 타기’의 해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열 두 달 모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사람에게는 수료증 같은 것을 주고.... ‘참 좋은 생각이네. 목표도 있고 꼭 목표를 이뤄야 할 이유도 생기고....’ 나 혼자 생각했다.
새해가 밝자마자 새벽 1시, 나는 나 혼자 생각했던 모든 것을 종이에 적어 나의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취한 사이에 모두 싸인을 하게 했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이해를 하지 못한거지?’
연휴 후 첫 출근을 해서 동료들에게 모든 자세한 사항을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적어도 한, 두 명은 1월이 끝나기 전에 나에게 연락을 해 올 것이고, 우리는 가장 멋지고 긴 출근 시간을 즐기고, 여름에는 이틀 동안 야간 야영을 하게 될 것이고, 1년에 최소한 1번은 해외로 나가 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생각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내 의견에 적극 호응해 주지 않았다.
어쩌면 나 혼자 너무 많은 것을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야영은 이미 중, 고등학교 때 다 해 본 것이고 나는 이미 현대시대를 사는 성인이 아닌가? 그리고 한 겨울에 최소한 하루 밤을 눈 속에서 자야 하는 것은 빙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얘기지, 지금은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렇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산악 여행들은 내가 직접 가서 수많은 별들이 덮인 하늘을 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생생하게 보고 느낀 것들이었다.  그렇다. 내가 직접 몸소 모든 것을 겪어 보는 것이 가장 큰 공부이고 경험이 된다.
나는 눈과 얼음으로 덮인 곳을 지나서, 정상에 오르려면 야영을 할 수 밖에 없는 프랑스 알프스로의 등산 여행을 계획했다. 어느 날 밤, 나와 나의 동료들은 라 메이지(La Meije)와 다른 산들에는 천둥 번개가 칠 때 피크 노드 데 카발레스(Pic Nord des Cavales)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우리가 있는 곳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지만 천둥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최고로 꼽는 여행은 토레스 델 페인 인 파타고니아(Torres del Paine in Patagonia)의 거대한 3개의 타워 아래에서 잠을 자고 5000 피트 아래의 수평선 너머로 해가 뜨는 것을 본 그 날이다. 작은 침낭 안에서 나는 누구도 보기 힘든 최고의 산들의 멋지고 장대한 경치들을 구경했다.
우리 여행은 팀원들의 좋은 아이디어로 점차 나아지기 시작하였고 우리의 시리즈 여행을 1월보다는 6월에 시작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도 나왔다. (나의 2004년 계획을 잘 이해하지 못했나 보다.) 1월 중순이 되자 우리는 첫 번째 도전을 위한 날짜를 의논하기 시작했고 특별한 이유 없이 핑계를 대며
도전에 참가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막으려는 대책도 세워졌다. 나는 팀원들의 열의와 관심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팀원들 중 가장 열심을 내어 도전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3등은 늘 막대 사탕을 물고 다니고 작업복을 입으며 대머리인 S에게 돌아갔다. 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자신의 레이싱 스케줄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2등은 엘비스의 팬이며 2달 동안 임시 해직을 당해서 주중에는 우리와 동행 할 수 없다던 J에게 주어졌다. 나는 J에게 주말여행을 제의했고 J는 즉시 자신의 여자 친구와 함께 팀에 합류했다.
그러나 1등을 차지한 사람은 정말로 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시즌 동안 페이스 리프트(주름살 제거 수술)을 받고 있었다가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 정도였다면 아마 2등밖에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여행 소식을 듣고 나서 얼굴 반 밖에 수술이 안 된 상태에서 에딘버그에서 런던까지 우리의 1월 도전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라 온 것이었다. (나머지 반쪽 얼굴 수술 때문에 3,4월 도전에 빠져도 정상참작이 되는 행운도 얻었다.) 그가 바로 에쉴리 그린이다.

1월 그리고 펜트랜드 방공호에서의 하루
1월 30일 되었다. 한 달을 다 보내고야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이래서는 안 된다. 저 멀리 영국의 끝에서부터 우리와 동행하기 위해 온 에쉴리를 위해서는 우리의 여행이 뭔가 뜻 깊고 기억에 남을 만 해야 했다. 내가 힐렌드(Hillend)에서 즐길 스노우보딩이며, 우리가 방문 할 여러 곳을 에쉴리에게 떠들며 얘기했으나 그는 우리가 가져온 먹을 거리에만 관심을 두고 뭐가 좋은지 마냥 웃기만 했다.
너무나도 멋진 겨울이었다. 햇살은 에딘버그를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고, 스노우보딩은 내가 마지막 코스에서 심하게 넘어져 양손목과 갈비뼈가 부러질 뻔 하기 전까지는 아주 재미있었다. 그게 다치진 않았다. 우리가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는 동안 날씨는 우리의 계획을 아는지 모르는지.... 금방 세찬 비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다음 날 31일이 여러 가지 일정으로 꽉 짜여 있고 첫 번째 관문에서부터 그냥 물러서는 건 나머지 일 년을 모두 망쳐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에 후퇴는 옵션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베낭을 다 모으고 케잌을 먹은 뒤 캄캄한 밤 속으로 향했다.
나의 계획은 두 팀으로 나누어서 언덕을 한 번 크게 돌고 나서 방공호에 모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대한 비에 너무 많이 젖지 않도록 하고, 아침을 기약하기로 했다. 나는 가는 길에 스카우트 캠프를 지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처음 도착해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우리야 이런 날씨를 자청해서 온 것이라지만 그들은 아닐텐데.... 좀 안 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중 하나가 내 자전거를 보더니 “아저씨 그 자전거 좋은 자전거도 아니네요. 서스팬션도 없고 기어도 없잖아요.” 이런.... 요즘 스카우트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그 녀석들이 안됐다고 생각이 하나도 안 들었다.
10분 후, 우리 팀은 나머지 팀과 만났다. 온 몸이 다 젖어서 꼭 물에 빠진 생쥐들 같았다. 다들 자신들이 집에 따뜻한 침대를 놔두고 이 늦은 시간에 비바람을 맞으며 왜 생고생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방공호에 도착하자마자 텐트를 꺼내서 폈다. 왜 내가 그라운드 시트(텐트 속에 까는 방수 깔개)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게 있었더라면 비를 막는 것으로 사용했을텐데.... 올드 풀테니를 몇 모금 마시고 한밤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비가 그쳤다.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눈이 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너무 좋아서 흥분하였고 나머지 세상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이 시간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이트 클럽에서, 공항에서, 또는 원고 마감 때문에 밤을 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전화를 걸어 잠을 깨울까봐 아예 잠을 자지 않고 우리의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는 눈이 내리는 하늘을 보며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 했다. 내 12년 된 침낭은 방수가 잘 되지 않아서 몸이 축축했다. 그날 밤, 나는 2번씩이나 10 야드를 뛰어가서 볼 일(?)을 봐야 했다.
해가 뜨기 시작했다. 눈이 그쳤고 배가 고팠다. 썰은 버섯, 베이컨, 계란, 그리고 버터를 모두 준비했다. 성냥!!! 성냥은 방수 백에 들어있지 않은데다가 워낙 습해서 다 젖은 터라 쓸 수가 없었다. 주위에도 비벼서라도 불을 필 마른 가지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대신 눈 위를 한 번 둘러보고 옵시다.” 내가 제안을 했다. 에쉴리는 자신의 가방을 뒤지며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겨울용 장갑을 잊어버리고 안 가져왔다고 했다. 나는 재빨리 “뭐, 사실 나도 너무 추워서 한 바퀴 도는 거 별로였어요.” 라고 말했다.
아침 식사가 늦어지고 자전거를 타는 것도 그만두고 우리는 그대신 언덕을 신나게 내려가기 전에 잠을 좀 더 자두기로 했다. 눈이 너무 많이 왔고 길이 미끄러워 에쉴리가 장갑을 가지고 왔다고 해도 어차피 멀리 가진 못했을 뻔 했다.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밖에서, 침낭 안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일 년을 시작하긴 한 것 아닌가?

브링지우드(Bringewood)와 모티머(Mortimer)에서의 발렌타인 데이
2주일 후, 나와 에쉴리만이 두 번째 여행을 떠났다. 우리의 모든 장비가 다 마르고 성냥도 습기와 접촉을 못하도록 잘 싸고 혹시 몰라서 라이타도 챙기고 장갑은 2 켤레씩 챙겨 놓고 에쉴리와 나는 루드로우(Ludlow) 여행을 상상해 보았다. 14일이 지나고 위도 350 마일의 변화가 주변 환경 온도에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나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몇 년 동안 자전거를 타서 익숙한 루드로우 근방의 모티머와 브링지우드에 왔다. 우리가 어디로 갈 지 특별한 계획도 없이 발 닿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에쉴리와 나는 하이 비날스(High Vinnals) 정상이 우리가 잠을 잘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트레일을 따라 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내 자전거 무셔의 첫 번째 나들이였다. 무셔는 나의 눈부시게 빛나는 새 오렌지 섭제로(Orange Subzero) 자전거인데, 포크가 5 인치이고 타이어와 디스크가 아주 두툼하다. 나에게 있어서 완전 새로운 경험이다. 집에서 출발한 지 5분 뒤, 내 자전거 바퀴에 펑크가 났다. 아마 새 자전거 바퀴가 5분 만에 펑크가 나는 건 신기록이 아닐까 싶다.
하이 비날스의 정상에서 나와 에쉴리는 밤을 보냈다. 이번에는 소나무 가지들로 나무 침대 프레임을 만들고 그 위에 그라운드시트를 깔아서 완전 무장을 하고 잠이 들었다. 아무리 험한 날씨였다 해도 우리 둘은 따뜻한 바구니 안에 잠든 강아지들처럼 곤히 잘 수 있었다. 아침에 성냥으로 불을 지펴 아침을 해서 먹고 누군가 나타나기 전에 우리의 모든 흔적을 없애고 또 출발했다. 우리가 자주 다니던 곳 몇 군데가 자연 보호 대책에 의하여 더 이상 걸어서 들어갈 수 없는 제한된 보호 지역이 되어 있었고 우리는 브링지우드의 NPS 다운 코스로 내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곳은 다음 주말에 다운 힐 경기가 열리는 곳이었고, 150여명의 참가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룩색을 메고 내려오는 우리를 보자 깜짝 놀랬다.

3월
3번째 달을 맞아 도전의 열기는 더해졌고, 다른 동료들도 생겼다. 칼룹 소워드, 스튜어트 니콜슨, 대이브 카메론, 그리고 폴 합우드가 우리의 여행이 그냥 심심풀이가 아닌 진지함을 깨닫고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
3월 17일이 우리의 ‘가장 긴 출근 길’ 여행 날짜로 정해졌고 나와 칼룸, 대이브, 폴은 글렌트레스(Glentress)를 목표지점으로 세웠고, 에쉴리와 스튜어트는 해슬미어(Hasslemere)의 트레일을 답사하기로 했다.
에쉴리와 스튜어트에게 2주 전쯤의 뒷 스토리가 있었다. 야영 자전거 타기에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전거와 침낭이다. 그런데 런던에서 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 열쇠가 런던에 사는 여자 친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여자 친구는 어디선가 친구들과 수다를 떠느라 집에 없고 전화까지 꺼놔서 연락은 되지 않았다. 자전거와 룩색은 집 마당에 있었다. 나도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는데.... 스튜어트가 나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왔다. 에쉴리와 스튜어트는 식당에서 대충 맥주를 마시며 저녁을 떼우러 갔지만 여자 친구 라라가 어디에 있을지 찾는데 너무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 사이에 식당마저 문을 닫았다.
에쉴리와 스튜어트는 자전거를 타고 룩색을 메고 데빌스 펀치보울(Devils Punchbowl)로 향했다. 에쉴리는 스튜어트에게 가장 좋아하는 트레일들을 소개해 주었고 그들은 블랙 다운(Black Down)에서 새벽 2시 30분에 잠을 자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전화를 했다. 5시 30분에 잠을 깨어서 베이컨을 요리해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른 출근하는 사람들과 같이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출근을 했다. 그들이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실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그 재미있는 순간에 같이 있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글렌트레스와 클로이쉬 힐스(Cloish Hills), 그리고 펜트랜드까지 가기 위해 계획을 짰다. 우리는 수요일 밤을 택했다. 그 날이 글렌트레스의 교통이 가장 원활한 날인데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이 여는 날이라 우리가 굶주릴 염려도 없었다. 이것 저것 꼼꼼히 챙겨 우리는 세 번째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익숙한 글렌트레스의 트레일들을 지나 처음 가보는 곳으로 들어섰다. 캄캄한 어둠과 낯선 길이 우리를 지체하게 했다. 달도 뜨지 않아서 클로이쉬 힐스로 가는 길은 거의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힘들었다. 아마 훌륭한 트레일들이 많이 있었을텐데 너무 캄캄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지나쳐야 했다. 한참을 헤매다가 가까스로 펜트랜드 트레일로 가는 길을 찾았다. 길을 찾아 헤매는 바람에 스케줄보다 좀 늦어졌고 우리 중 2명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여서 우리 계획보다 5 마일 500 피트 떨어진 곳에서 할 수 없이 밤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소나무 숲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축제를 시작했다. 우리는 에쉴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의 오늘 하루를 얘기해 주었고 친구들에게 어김없이 전화를 걸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늦잠을 잤다. 우리가 깨서 출발하려고 할 때 에쉴리는 이미 출근 기차에서 우리에게 전화를 했다. 아침 먹는 것이 채 소화되기도 전에 우리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길들을 따라 보레스테인(Borestane)과 하로우 레서브(Harlow Reservoir)를 거쳐 워터 오브 레이스(Water of Leith)를 지나 다운타운으로 갔다.
40 마일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4400 피트의 등반.... 정말 멋진 밤을 보냈다. 그리고도 1시간 반밖에 지각을 하지 않았다. 나의 회사 전화 음성 메시지에는 내가 어젯밤 여행을 잘 마치고 살아 돌아왔는지를 묻는 친구들과 동료들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3개월 동안 3번의 야외 도전을 해냈다. 이제는 경험이 많이 풍부해졌으며, 우리와 같이 가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선 정도다. 앞으로 남은 기간에도 아무런 사고 없이 나의 새해 계획을 꼭 성공으로 이끌어 낼 것이다.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8  Tour de Mont Blanc / 뚜르드 몽블랑 허걱랠리 완승기    kmtb 2007/08/27 1063 11707
7  유타(Utah) 주 모압(Moab)의 24시간 경기 10주년    kmtb 2005/04/23 1197 11505
6  지구의 지붕, 에베레스트까지    kmtb 2004/09/28 1182 11056
5  24 시간 솔로 내셔날(24 hours Solo Nationals)    kmtb 2004/09/09 1177 10463
4  코코펠리 트레일(Kokopelli Trail)에서 신기록 수립한 마이크 큐리악(Mike Curiak)  [1]  kmtb 2004/09/01 1271 12029
3  콜로라도 트레일(Colorado Trails)    kmtb 2004/08/12 1152 11169
2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화산, 오호스 델 살라도(Ojos del Salado) 기행    kmtb 2004/07/26 1147 10274
 가장 긴 출근 길    kmtb 2004/07/26 1022 10416

    목록보기 1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zero
 l i n k s
Dr.박순백
Reliable Racing
Ski Page
GoAlps.com
Chamonix, France. Alepn Rose. (33) 04 5053 7792.
강촌레스토랑

news events people columns onepoint skitalk clubs aboutus links banners photos videos
instructors junglessons jungphotos jungqa jungvideos
skiplaces skishops buysell memberphotos membervideos tourboard freeboard
© 2003-2004 Korean Ski US. Last modified: 2011/01/15 21:52:48 est New York

test